의학소사

첫 면허 의사들의 독립운동

1910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되면서 국권을 빼앗기자 이들은 홀연히 나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김필순은 1911년 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그의 일대기는 2008년 8월 문화방송(MBC)의 광복절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광야의 의사들>에 소개된 바 있다. 

박서양은 1917년 경 학교를 사임하고 연변으로 망명하여 병원을 열고, 학교 및 교회를 세워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서양은 2009년 11월 말 SBS에서 방송되었던 의학 역사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 7명의 졸업생 중 김필순, 주현칙, 신창희, 박서양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도산 안창호였다. 안창호는 김필순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으며, 김필순은 안창호가 1902년 9월 3일 구리개 제중원 구내의 교회에서 이혜련과 결혼할 때 초청인이었다. 

1907년 2월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안창호는 세브란스병원 내에 있는 김필순의 집에서 머물면서 우국지사들과 잦은 모임을 가졌다.

또 한 사람 간접적으로나마 의학생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신창희의 손아래 동서인 백범 김구였다. 그는 신창희가 나중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이들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들의 대부분은 소의(小醫)나 중의(中醫)를 넘어 나라를 구하는 '대의(大醫)'의 길을 택했다.

<글 : 박형우, 박윤재/연세대 교수 www.per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