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소사

우리나라 최초의 흉부외과 수술  

  서울대병원 "매국노 이완용 수술기록 발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의 칼에 찔렸을 당시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일본인 의사로부터 흉부외과 수술을 받았던 기록을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기록물은 당시 병원의 단순한 의료기록이라기보다는 이완용 피습사건 후 일제에 의해 재판이 이뤄지면서 검사 측 요구로 의료진이 제출한 감정서 성격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감정서에는 피습 당시 이완용의 상태가 5페이지 분량에 걸쳐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이 감정서는 당시 외과의사였던 일본인 스즈키 고노스케가 작성한 것"이라며 "고노스케는 이완용의 상태에 대해 갈비뼈사이동맥에 심한 출혈이 있었고, 이에 따른 폐손상으로 좌측 흉부타박상과 외상성 늑막염 등이 생겼다고 상세히 적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완용이 당시 친일파의 거두였던데다, 일제 검찰의 요구로 일본인 의사에 의해 작성된 진료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인 의사의 진료기록이긴 하지만 기록 자체가 과장되거나 이완용측에 유리하도록 작성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  일반인의 의료기록이라면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재판에 관계된 자료라서 보관돼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의사는 당시 현장에서 체포됐으며, 1910년 1월 기소된 후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출처 : yonhapnews.co.kr  2008. 12. 18> 

*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나의 생명을 빼앗지마는 국가를 위한 나의 충성된 혼과 의로운 혼백은 가히 빼앗지 못할 것이니, 한 번 죽음은 아깝지 아니하거니와 생전에 이룩하지 못한 한(恨)을 기어이 설욕(雪辱) 신장(伸張)하리라 "

- 사형선고를 받은 뒤 이재명 의사 최후 진술 중에서 (19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