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소사

"100년 전에도 '활명수'가?"…그 탄생의 비밀


양약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본인에 의해서도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치약, 비누 등을 가지고 한국인에게 접근했던 일본인 매약상들은 취급 품목을 약으로 넓혔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아직 약품을 대량으로 조제할 만한 시설을 가지지 못한 것을 이용하여 서양 약품과 자국에서 제조한 약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약품은 '인단'이었다. 이외 용각산(龍角散), 건위고장환(健胃固腸丸), 오타위산(太田胃散), 중장탕(中將湯), 건뇌환(健腦丸), 대학목약(大學目藥), '로오도목약' 등이 줄이어 한국에 상륙했다. 

1890년대에 이르면 이미 전국 각지에 가지 않는 곳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본인 매약상들은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한국인들은 약을 통해 서양 의학을 맛보기 시작했다.

서양 의학은 서서히 영역을 넓히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의 한약에 영향을 주었다. 서양 의학을 수용한 새로운 약이 발명되었다. 1897년부터 지금까지 소화제로 통용되고 있는 '활명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동화약품의 창업자인 민병호는 한약 지식에 능통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직위인 만큼 선교 의사이자 어의였던 알렌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근무하던 제중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관심은 서양 의학에까지 미쳤고, 동서 의학을 절충한 새로운 약의 개발에 나섰다. 몇 가지 한약재를 추출하고 여기에 알코올, 클로로포름 등 서양 의학 지식을 첨가했다. 소화 신약 '활명수'의 탄생이었다.

<글 : 박형우, 박윤재/연세대 교수 www.per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