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소사

다 빈치가 한밤 중에 공동묘지에 간 이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은 <모나리자>의 작가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1452년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빈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다 빈치는 집에서 법률 공부를 강요했으나 자신에게는 화가로서의 재능이 더 있다고 생각하고 그림 공부를 고집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모나리자>를 그린 휼륭한 화가만은 아니었다. 다 빈치는 14세때 조각가로 유명한 화공인 베르키오 밑으로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화공 길드는 기술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맡았다. 토목, 건축, 회화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다. 따라서 레오나르도 역시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배웠다. 

   또한 당시는 무엇이든지 잘하는 '만능의 천재'가 동경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젊은 날을 베르키오 밑에서 보낸 다 빈치는 1482년 밀라노로 갔다. 

   20년 간의 밀라노 시대에 그는 군사 기술자로서의 종군, 측량과 지도 제작, 기증기의 고안, 운하건설, 궁정 오락 연출 등 실로 광범위한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완성된 그림이 <최후의 만찬>이다. 
 
   또한 압연기 등 새로운 공작 기계를 발명했고 새의 날개와 공기의 운동을 연구하여 인력을 동력으로 하는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설계도도 남겼다. 물론 이러한 기발한 발상들은 실제로 거의 실현되지 못하고 그의 노트에 남아 있을 뿐 그의 천재성을 유감 없이 보여 주는 것들이다. 

   그는 인체 해부도도 남겼는데 이것은 매우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인체를 해부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인체의 여러 부위의 구조와 비례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 교회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직접 해부해 보았다. 

   그는 약 30구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 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촛불로 비추어 가면서 해부했다고 한다. 

<글 : 안효상/상식 밖의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