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소사

근대의학 도입 이전에 서양의학을 소개한 책들  

   우리나라의 의료는 수천년 동안 동양의학의 전통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군대와 상인들과 선교사와 함께 서양의 과학이 동양으로 밀려오던 17세기부터 근대 서양의학의 이론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근대 서양의학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은 이지조(李之藻, ?-1631)로 <西學凡>과 <職方外紀>를 저술하여 유럽 각국의 교과과정과 학문의 특징 등을 설명하였다. 

   그 뒤에 소개된 책은 아담 샬(1591-1666)의 <主制群徵>이었다. 아담 샬은 독일 태생의 예수회 선교사로 1622년 중국에 도착하여 천주교리를 전도하면서 많은 저서를 남겨 명말, 청초의 중국 문화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주제군징>은 교리서의 일종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주로 소개하였고, 아울러 당시까지도 유럽에서 인정되던 갈레노스의 인체생리설을 소개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그곳에서 아담 샬과 알게 되어 1645년 귀국할 때 天文書, 算學書, 西敎書 등과 함께 그 책을 가져왔으리라고 믿어진다. 

    그런데 이 책에 기록된 서양의학의 이론들은 그뒤 숙종, 영조 때 이익(李瀷, 1681-1763)의 저술인 <星湖僿說>(卷 5)에 <西國醫>라는 글로 소개되었으며, 이규경(李圭景, 1788-?)도 <五洲衍文長箋散稿>(卷 19)에서 <주제군징>을 인용하여 서양 의사들의 해부학 지식과 심장, 간, 뇌, 비장, 담낭, 신장 등의 생리적 기능을 <人體內外總象辨證說>이라는 글로 실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당시의 한역 의술서인 <全體新論>, <西醫略論>, <內科新論>, <婦O新說> 등을 읽고 이를 <明南樓文集>에 소개하였으며, 스스로 <身機踐驗>을 저술하여 서양의학의 장점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실학파의 거두인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麻科會通>의 부록인 <種痘心法要旨>에 두창이 전염병이라는 설명과 함께 종두 기법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또한 영국 의사 제너(Edward Jenner)의 우두종법을 한역(漢譯)한 <種痘技法>을 비롯하여 철종 때 청나라 상해 인제의관(仁濟醫館)에서 간행된 영국 의사 합슨(Habson)의 한역 서의서들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장서각(藏書閣)으로 경복궁 안에 있던 집옥재(集玉齊)의 도서목록 중에 다음과 같은 한역 서의서들이 수록되어 있는바 <內科O徵>, <引痘新書>, <儒門醫學>, <裏紮新法>, <花柳指迷>, <西醫眼科撮要>, <化學衛生論>, <衛生要旨>, <全體圖說>, <全體通考>, <西醫略釋> 등이다. 이상의 한역서들은 청나라를 왕래하던 사절에 의하여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의사학회지 3권 1호>